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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세상 만들기

마음은 아직 뜨거운데...

양로원에서의 자원봉사 날인 오늘, 성탄절을 맞이하여 자원봉사자들이 어르신들에게 따뜻한 양말을 선물해 드리고, 싱어송라이터 할아버지를 모시고 음악 파티를 열었다. 기타를 경쾌하게 연주하시는 분의 흥겨운 노랫소리에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어르신들은 일어나 요양사, 봉사자들과 즐거이 춤을 추었다. 하지만 많은 분들이 휠체어에 앉아 계시기에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고, 목을 가누기 힘든 정도의 마비증세가 있으신 분들은 뒤로 젖혀진 휠체어에 그저 누워계신 듯 했다. 그런 장면이 전부인 줄 알았다. 소수는 춤추고 다수는 무반응인 그런 행사.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몇 가지 장면이 나를 놀라게 했고, 눈시울이 붉어지게 했다.

첫번째로 나를 놀라게 한 것은, 내 뒤에 누워계신 할아버지였다. 그냥 누워서 손을 많이 떨고 있는 줄로만 알았는데, 조금 뒤 직원이 나에게 알려주었다. 그 할아버지가 옛날에 밴드에 있던 분이라고 말이다. 자세히 보니, 할아버지는 손 뿐만 아니라 발로 떨고 있었다. 한참을 그렇게 떨다보니, 할아버지가 신고 계신 샌들이 벗겨져서 휠체어 발판 밖으로 떨어질 지경이 되었다. 신발을 주워 발에 신겨드렸다.



자세히 주위를 둘러보니 마비되어 누워계신 다른 할머니도 흥겨운 음악이 나오자 다리를 조금씩 계속 움직이셨다. 마비라는 것이 음악을 좋아하는 마음까지 마비시킬 수는 없었다. 비록 몸은 내 맘대로 움직이지는 못하시지만, 음악이란 사람의 마음과 마비된 몸까지도 움직이는 훌륭한 도구였다.

두번째로 나를 놀라게 한 것은, 그 행사를 주최한 자원봉사자 할머니들과 요양사들이었다. 10-20년 뒤면 이곳에서 살게 될 수도 있는 봉사 어르신들이 양로원 노인들께 따뜻한 양말을 한 켤레씩 선물하고, 따뜻한 눈길로 인사하고, 따뜻한 손을 잡아 함께 춤을 추었다. 춤을 출 수 없는 분들께 한없이 드리는 따스한 눈길을 뒤에서 바라보고 있자니, 내 눈에서 하트가 절로 나오고 내 마음도 따스해졌다.

그런데, 밴드에 계셨던 할아버지가 한참을 손과 발로 즐기시다가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셨다. 온 몸으로 음악을 즐길 수 있는 정신이 있는데, 몸은 마비되어 있으니 그 마음이 오죽 힘들까 생각하니 나도 눈이 뜨거워졌다. 할아버지가 밴드출신이라는 것을 알고 있던 요양사들은 할아버지의 속상한 마음을 알아채고 할아버지 곁으로 가까이 다가와 눈물을 닦아드리며 곁에 있어주었다. 요양사의 그런 모습이 이 분께는 가족과 다름이 없는 존재같이 느껴졌다. 내 가족은 곁에 없지만, 이렇게 좋은 마음으로 내 가족같이 돌보아주는 요양사가 그 분들 곁에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이 곳에서 봉사하면서 느낀 것은, 내가 누군가를 도울 수 있어서 감사하다는 것도 있지만, 오히려 봉사의 경험을 통해 사람의 마음에 대해 더 알게 되고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단순히 봉사하러 다니는데 매번 무언가를 얻어오는 귀한 경험을 매주 하고 있다. 오늘도 감사함으로 방문을 마무리했다. 내일이면 어르신들이 오늘 가진 흥겨운 시간은 다 잊어버릴 가능성이 더 크지만, 내일이 온다면 그 또한 감사함으로 하루를 살아내시길 바라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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