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나는 약속대로 자원봉사를 하러 양로원에 방문했다. 월요일 오전이라 그런지 내가 방문하기로 한 어르신께서 침대에 누워 잠이 들어계셨다. 조심스레 깨워드리니 몸이 기력이 없으시다고 한다. 조금 뒤, 정신을 더 차리시고는 물 한잔 드시고 찬송가 악보가 복사되어 있는 바인더를 손에 들고는 피아노를 치고 싶다고 하셨다. 피아노가 어디에 있는지 함께 찾으러 나갔다. 여기 저기 찾으러 다니다가 레크레이션 룸에 있는 키보드를 발견했다. 나는 너무 잘됐다고 생각했는데, 그 방 담당자는 너무 무덤덤하게 피아노를 치려고 하냐며 키보드를 셋업해주었다. 아마도 할머니는 종종 피아노를 치러 어셨나보다. 할머니는 매일을 이렇게 새로운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일까?
10곡 정도 되는 찬송가를 하나 하나 치기 시작하셨다. 82세 노인이 놀랄만큼 악보도 잘 보시고 피아노도 잘 치셨다. 곁에서 지켜보다가 나도 마음이 동하여 찬송을 작은 목소리로 불렀다. 나의 찬송에 더욱 도취되신 할머니는 끝 곡까지 마치셨는데, 다시 맨 앞장으로 돌아와서 다시 시작하셨다. 나의 목소리가 함께 하니 피아노가 더 잘 된다며 더욱 신이 나셨으니 나는 계속 노래를 해야했다. 이러다가 목이 잠길라 하면서도 곁에서 불러드렸다. 행복한 표정으로 피아노를 마무리 하시고는 그 방에서 진행되는 다음 활동에 참가하셨다.
두번째로 방문한 분도 주무시고 계셨다. 깨워드리니 머리가 아프다고 호소하신다. 어제는 약을 안 먹었는데, 간호사가 먹었다고 안줘서 약을 안 먹어서 힘들다고 하신다. 이러다 두통에 관한 이야기만 열번을 들을거 같았다. 간호사는 컴퓨터에 기록하면서 약을 드리기 때문에 분명 약을 드셨을것이다. 그 찰나 어떤 동양 할머니가 들어오셨다. 중국 할머니신데, 말은 안 통해도 같이 운동하신다고 하셨다. 나도 뭔가 활동이 필요하실 거 같아 함께 나가서 걷자고 제안했다. 언제 머리가 아팠냐는 듯 일어나셔서 함께 걷기 시작했다. 물론 두분의 속도에 맞추어 아주 천천히 걸었다.
두분 다 영어를 거의 못하셔서 서로에 대해 아는게 없었다. 나이도, 출신지역도, 가족관계도 아무것도 몰랐지만, 같이 운동하는 친구였다. ‘엑서사이즈’ 라는 말이 두분을 엮어주는 가장 실용적이고 근본적인 우정의 언어였다. 복도를 걸으시며 만나는 요양사, 간호사에게도 ‘엑서사이즈’ 하신다. 우리 지금 운동해 라고 말이다.
한창 운동을 하다가 의자에 앉아 쉬시는 동안 이 중국 할머니가 홍콩에서 오신 분이며, 올해 94세시라는 것을 알아냈다. 한국 할머니가 내가 알아낸 정보에 기뻐하셨다. 또 궁금한 것이 있으신지 물었다. 홍콩 할머니를 방문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궁금하다고 하시더니, 금세 괜찮다고, 그걸 알아서 뭐하냐고, 중요하지 않다고 하신다. 한국말이었으면 이것저것 서로 묻고 이야기해서 서로 닮아 맞는 점보다 서로 다른 점을 아주 많이 발견해버려서 친구가 되기 어려울텐데, 언어의 장벽은 오히려 이 우정을 보호해주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가 더 들면 친구를 사귀기가 더 어려워지겠구나 생각이 들기도했다. 노년에 나는 변하지 않으려 할 것이고 나와 다른 것이 더 견디기 힘들어지겠지. 더 늦기전에 친구 만들기를 게을리하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민생활에서 친구는 아무리 만들어도 계속 다른 곳이나 한국으로 떠나가버리니 친구만들기를 게을리해선 안된다. 나와 다른 사람들을 만날 때 그들이 나와 다른 것이 이상한게 아니라 나의 포용심을 더 넓게 해주는 귀한 만남이 될 것임에 더욱 그렇다. 그래야 노년이 되어도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친구를 만드는 것에 익숙해져있지 않을까? 그래야 홀로 남겨지지 않고 같이 남겨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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